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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피해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책 읽기
생존자들 : 뿌리 깊은 트라우마를 극복한 치유의 기록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쓰려니 생소한 느낌이 든다.
상대에게 말하듯 써야 할지 독백하듯 할지부터 고민이 되었고
스토킹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애쓰며 겪던 수치심에
더 많은 울음을 삼킨 날들을 셀 수 없기에
설명하는 것이 아닌 독백의 형태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지칠 줄을 모르는 사람에게 고통을 당하는 동안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흐르는 줄 몰랐다.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다.
신고, 각종 상담, 화를 내거나 부탁을 했다가 어르고 달래보기까지
그러나 교묘하게 접근하던 방법은 시간이 갈수록 더 치밀해졌다.
애써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죄송하게도 소용이 없었다.
별 일 아닐 거라고 좋게 넘어갈 거라고 여긴 내 바램은 빗나갔고
스토킹을 당하고 있음을 받아들인 이후 감정 기복과 좌절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도 했었다.
나는 내 감정을 컨트롤 해야 할 필요성을 인지하고
내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해결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심리, 감정, 스트레스, 회복탄력성, 트라우마, 설득, 대화와 관련된 주제의 여러 책들을.
책들은 모두 도움이 되었다.
더는 너무 큰 불안에 쫓기지 않을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내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달라지진 않았다.
도망치듯 이사를 하고 옮긴 집에서 2개월 정도는 잠잠하다가 어떤 계기로 다시 발작을 했다.
내가 집을 나설 때마다 흥분을 했기 때문에
또다시 그 사람이 불안하지 않도록 외출을 할 때마다 둘만 아는 SNS 계정에 보고를 하고 있었다.
끈질긴 그 사람은 목적하는 바를 이룰 때까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 사람이 많은 것을 가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게 주요한 요소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제는
그 사람이 아닌 나에게서 벗어나고자 한다.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나의 무엇이 그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충분히 예쁘고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고도 남을 사람이
나이도 많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라는 여자에게 정신병자처럼 집착하는 이유를.
나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매력적이어서 좋아하는 것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누군가를 괴롭히며 쾌감을 느끼는 범죄자일 수도 있고
내가 처음인 거라면
성공사례를 만들도록 둘 수도 없다. 나와 같은 피해자가 나와선 안 되는 거니까..
당신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나를 가질 수 없다.
나는 나를 조금만 알아도 거의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편이다.
내향인. 혼자 살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연애 상대는 없고 남사친도 없다.
취미는 책 읽기, 가끔 피아노를 친다. SNS는 안 하고 집에 TV는 없다.
개인이 발전하는 것은 우주의 섭리라고 생각하고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해야 할 것을 하면 나머지 시간은 누워있는다.
평생에 외로움을 느껴본 건 아마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인정욕구 같은 것이 없다.
고로 관계에 집착을 해본 적도 없어서 나를 집착하는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다.
MBTI는 ISTP
앞에 IST는 바뀐 적이 없고 회사 생활로 해보면 ISTJ 가 나온다.
이 중 T는 90~100% 정도 나오는데
얼마 전 70% 나온 게 가장 낮게 나온 수치이다.
약 3년 정도 전부터는
스마트스토어, 블로그로 개인 사업을 하고 있고
평일 오전, 오후 시간을 제외한 새벽이나 저녁, 주말 공휴일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내 돈만 벌고 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맨날 보는 사람을 계속 보는 일만 할 수 있다.
친구를 만나지 않았고
가끔 나가던 모임도 참여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
스토킹을 당한 이후에는 누군가를 만날 겨를이 없었다.
일 이외엔 가족에게 헌신했고 이제 8개월 차인 조카가 너무 예쁘다.
정신병자에게 집착을 당하는 고통에서 가족들이 날 살리는데 큰 힘이 되었다.
꾸준히 해오던 운동도 중단했고
피아노를 치면 화가 나서 집중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책으로 위로를 받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몇 가지가 있다면
요즘의 미의 기준에 맞지는 않지만 내 얼굴을 좋아한다.
적당히 굴곡지고 균형 맞는 내 몸매도 좋아한다.
과로를 하면 가끔 쓰러지긴 하지만
빈혈 말고는 건강상의 밸런스가 잘 맞는 것도 좋아한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싫어해서 중학교 때까진 결벽증이 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어른이 되고선 그런 점이 날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내가 손해를 좀 보더라도 남을 돕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20대 초반엔 자원봉사로 3년 정도 활동을 했고
그 이후엔 주변 사람이나 회사에서 누군가를 돕는 활동을 하고
내가 한 행위 자체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 존경받을 직업을 가지거나 성공을 한 사람들을 멋지게 생각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흔한 일을 소명을 가지고 특별히 훌륭히 해내는 사람을 멋지게 생각한다.
내가 맡은 일은 어느 일이든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 했고
회사에서 내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남들보다 조금 더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이 중 몇 가지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그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들었고 나를 고통에 빠지게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던 내가
그냥 편하게 살고 싶어 좋아하는 것에 더 집중했던 내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벗어나고 싶고
그러기 위해 그동안의 나를 벗어나려고 한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당하기 딱 좋던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하고
나를 드러내고
약속을 잡고 사람을 만나고
취미 활동을 하면서
관계에서 오는 기반을 단단히 만드려고 한다.
그리고 이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나만을 위해 내 고통을 줄이는 것만 생각하려고 한다.
[생존자들]에서는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수많은 피해자들 중에서도
트라우마를 극복한 영웅 4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에서 다룬 대처법은 내 고통에도 도움이 되었다.
등장인물들이 보여준 삶의 변화에 따라 그들의 모든 것이 변화하는 모습은 희망을 준다.
나보다 더한 학대를 당했음에도
그들이 갖고 있는 결단력, 용서의 능력, 꾸준한 천성을 잃지 않았던 점을 본받고 싶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두어 번을 정독하고
밑줄을 쳐가며 읽고
밑줄 친 곳을 다시 읽으며
내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내 평생에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트라우마'라는 주제의 이 책은
훗날 내 인생을 돌이켰을 때
없었으면 안 됐을 소중한 인생책이 될 것 같다.
정신적인 흉터를 가지게 되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저항하려 했던 내 노력과 시간을 너무 자책하지 않길 바란다.
정신질환 없이 이 힘든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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